오늘 부대의 한 용사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이 소식을 먼저 듣고 용사에게 전해주어야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부대에서 친족의 상을 당했다는 경우는 들어보았어도 직접 경험을 하니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아버지께서도 군 복무 중에 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굉장히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하셨다. 나도 지금 군 복무중이지만 그런 경우를 당하게 된다면 마음이 굉장히 아플 것 같다.
해당 용사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기에 교대할 용사와 같이 그 친구에게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걸어가면서 왜 근무를 교대해야 되는지 설명해주었다. 근무를 교대해주는 용사는 이를 듣고 다소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질문했다.
“종교가 있니?”
그 친구는 기독교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천국에 가셨을 텐데 그래도 이런 일을 마주하게 되면 힘들지라고 답변했다. 나 또한 기독교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왜 종교를 질문하였을까? 죽음은 인간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근래 의학, 공공보건, 심리학의 발전으로 죽음에서 조금은 멀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죽음은 우리의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일을 당면한 친구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근무장소에서 불러내었다. 근무를 서다가 갑자기 불렀으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뭔가 잘못한 게 있나라는 표정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전했을 때, 그 친구는 역시나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보였다.
“우리 할아버지요?”
평소에 다나까 체를 잘쓰던 용사였는데, 상황인지라 요체를 쓰기 시작했다. 현 군에서는 강요하지 않는 어투이지만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어투이다. 그리고 이 친구는 평소에 행실이 좋고, 체력단련도 열심히 하는 친구여서 그가 요체를 쓰는 것이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이들의 죽음은 직면하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조금은 익숙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자기 자신과 오랜 시간을 보낸 그것이 물리적인 시간이든, 마음으로 함께한 시간이든, 그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의 죽음은 쉽지 않다.
나의 죽음은 가장 직면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내 자신을 자연스러운 일이라 설득하여도 일생에 한 번뿐인 경험이자, 필시 올 경험이기에 또 나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존재이기에 나의 죽음은 직면하기가 쉽지 않다.
죽음을 직면할 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내 자신의 모습에 감사하게 된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내 주변에 살아있는 이들로 인해 감사하고, 그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는 것 같다.
죽음이 두렵기에 그 반대 극부에 있는 살아있음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 하루 살아있음을 서로 격려하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살아있음으로 다른 이들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내가 오늘 살아있음에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으로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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