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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느헤미야 2강

by 군 밖에서의 글쟁이 2023. 11. 25.

 나는 모태신앙이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지금까지 매주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교회를 다닌 것으로 인해 내가 잘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매주 토요일에 1대1 말씀공부를 하고 있다. 이 말씀 공부는 공부할 성경 본문을 보면서 준비된 문제도 풀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느헤미야 4장에서 5장 말씀을 같이 공부하였다. 

 

 말씀의 배경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는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신분의 백성들이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굉장히 높은 직급에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의 영광을 기억하는 백성들이었다. 솔로민이 통치할 당시의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태평성대였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금과 은이 거리에 굴러다녔다고 이야기한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알고 섬긴 데에서 온 축복이었지만 이후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분노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 백성들에게 넘기셨다. 

 

 말씀에 나오는 부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성전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상심이 컸다. 사실 아닥사스다 왕이 건축하고 있는 이스라엘 성전을 불태운 것이었지만 느헤미야는 그런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게 되었다. 궁금하다면 느헤미야 1장부터 3장을 찾아읽어보면 된다. 

 

 오늘 공부한 느헤미야 4장, 5장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외부 세력의 위협과 내부의 문제가 같이 터지게 된다. 

 

 외부의 문제는 사마리아의 총독인 산발랏으로부터 온 심리 공격이었다. 사마리아 땅의 총독인 산발랏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지어서 세력이 강화되면 자신이 위협을 받을까 걱정하여 먼저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군대를 이끌고, 성전 건축하는 곳에 나아와 비방한다. 

 

 느헤미야 4장 2절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하고"

 

 그들의 타겟은 유다 사람들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 공격을 퍼붇는다. 그들은 유다 사람들이 미약하다고 생각하게끔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게 되면 유다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자기자신이 미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실을 보았을 때, 그들이 유약한 것은 맞다. 군대도 없었고, 성전을 짓는 일꾼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와서

 "너 뭐 하지도 못하는 걸로 그렇게 씨름하냐? 뭐라도 해볼라고? 관둬라, 관둬" 

 

 이런 말을 했다고 상상해보자. 이 말을 쓰면서도 나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키 190cm에 몸무게 130kg 나가는 몸에 그림을 그린 아저씨라고 하면 깨갱할 것이다. 당시 유다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를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들이 우리를 업신여기니 주께서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 머리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뢰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을 다독여 성전 건축을 계속행했다. 

 

 산발랏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하지 않자 자기와 비슷한 이들을 몇몇 더 데려와 위협하였다. 

 

 아까 2절 말씀을 보았듯이 산발랏을 비롯한 이방인들이 유다 사람들을 비방하는데, 유다 사람들이 이 이방 백성들과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정신적인 공격을 당해서 그런지 유다 사람들은 10절에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아 짐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져서 성전 건축을 못하겠다라고 한다. 쉽게 말해 멘탈이 무너져 일을 더할 힘이 안난다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정말 말에는 힘이 있고, 그 말이 어떤 퍼포먼스와 합쳐지면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말과 행동은 중요하다. 

 

 유다 백성들의 힘듦을 안 느헤미야는 이제 가만히 있지 않고 칼과 창과 활을 성벽 뒤에 두고 백성들을 방비토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장 크신 분이었으며 이들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상기시키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지키기 위해 싸우라고 이야기한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들과 재산을 지키라고 이야기한다. 

 

 이후에 산발랏이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흩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계근무 및 건축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나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였으며, 느헤미야도 자신의 형제들과 자식들과 같이 칼을 차고 성전 건축에 참여하였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총독이였지만 힘든 일을 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가족들까지 참여시키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은 진행이 되었다.

 

 현재, 마이클 하얏트의 '초생산성'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마이클 하얏트는 생산성의 정의를 일을 빨리 많이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느헤미야는 총독이라는 어찌보면 높은 직위에 있는 자로서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데 집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생각해볼 때, 현재 내가 있는 군에서 옳은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정신전력교육 시간에도 많이 다루지만 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굉장히 단순한 글 같지만 이것으로 군은 하나가 되고 체력을 단련할 명분이 된다. 용사들에게 이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국방의 의무로 끌려와 시간을 낭비하는지라는 어찌보면 산발랏과 같은 심리공격에 지지 않고, 여기에서의 근무가 그리고 우리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함임을 그리고 이 국민이 너무나도 넓다면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기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땅에 수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그들의 삶과 번영을 위해 강해져야 함을 이야기하여야 겠다. 

 

 물론, 내 자신도 이 생각에 공감하며,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아직 내 자식들이 없는 것이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외부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나, 5장을 보게 되면 내부의 문제가 터진다. 성전 건축을 하기 위해 모든 백성이 용역을 함에 따라 농사를 짓고, 자신의 삶을 꾸릴 일들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유다사람들은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의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내부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기고, 누군가의 딸은 종으로 팔려가는 현상이 생기니 백성들이 나아와 느헤미야에게 부르짖었다.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지만 외부의 세력이 심리전을 펼쳤을 때 그들에게 바로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처럼 이번에도 깊이 생각한 이후에 귀족들과 민장들(족장의 느낌인 것 같다.)을 꾸짖어 각가 형제들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고 있음을 꾸짖었다. 이들은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찔렸는지 잠잠하여 말이 없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꾸짖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도 밝힌다. 자신과 자신의 형제, 또 자식들도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지만, 지금부터 그 이자 받기를 그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족들과 민장들에게 빌려준 돈으로 쌓은 재산의 100분의 1을 돌려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솔선수범과 지도로 반역하는 이 없이 느헤미야에 방향에 따른다. 

 

 이에 더해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총독으로서 아닥사스다왕으로부터 받는 녹을 12년간 거부하였다. 쉽게 말하면 12년을 월급없이 생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며, 자신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5장의 마지막 기도가 인상깊다.

 

느헤미야 5장 19절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한편으로는 이 기도가 느헤미야가 인간적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하는 것이 희생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백성을 위해서 내가 했다라고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은 하나님께 그 은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성들로부터 영광을 받거나 인정을 받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점이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처럼 큰 존재였다. 그리고 말씀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인지하는 하나님의 존재는 어떠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책이다. 하나님을 대했던 이들의 태도와 그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얼핏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굉장히 크신 분이라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녹을 안 받은 해의 횟수도 꼼꼼하게 세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으로부터 받는 축복이 훨씬 값지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이것을 알고 싶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싶다. 

 

 그 삶이 크게 되는 길인 것 같다. 그 삶이 위기 앞에서 버티는 힘을 주고, 그 힘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삶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삶일 것 같다.  그 삶이 행복할 것 같다.